[칼럼] 풀이 순서의 유동성
안녕하세요. 두 번째 칼럼으로 찾아뵙습니다.
사실 칼럼 소재를 선정하면서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칼럼을 읽는 학생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마도 수능 전까진 조금은 가벼운 칼럼 위주로 작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각설하고, 오늘의 칼럼은 시험지 운용 방식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사실 저는 현역이었던 작년 6월까지만 해도 '시험지 운용 방식' 이라는 키워드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교육청 모의고사만 풀어보던 당시에는 문학-선택-독서라는 고정된 풀이 순서를 고집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문학을 20분 내로 뚫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6, 9월의 불문학 시험지를 마주하고 생전 처음 보는 점수를 받은 이후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문학부터 푸는게 옳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6, 9월 기조를 반영한다 하더라도 수능이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런 수능에서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생각했고요.
따라서 문학이 어렵게 나오는 경우, 독서가 어렵게 나오는 경우처럼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풀이 순서의 다양성을 익히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 역시 거쳤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와 고심 끝에 얻은 결론은
"풀이 순서를 고정하기보다 최소한 플랜 B 정도는 만들어두는 편이 좋다." 입니다.
(실제로 저는 플랜 D까지 정해두고 수능장에 들어갔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 수능의 기조는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수능 1교시를 원활하게 뚫어내야 합니다.
아래에서 유동적인 풀이 순서를 구성하는 방법에 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1. 나에게 맞는 순서와 선택 기준을 구성하자.
모의고사를 푸는 순서가 하나 뿐이었다면 풀이 순서를 선택하기보단 늘 같은 방식으로 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듯, 수능 당일 출제될 시험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원래 독서를 먼저 풀었는데 수능 당일 선택 과목이 갑자기 어렵게 출제되서 기존에 풀던 방식대로 풀었을 때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독서와 문학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수능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강조할 "가능한 한 변수를 줄이고, 줄일 수 없는 변수는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기" 라는 대원칙을 고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시험지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시험지를 지배하며 푸는 방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기존에 풀던 순서(플랜 A라 통칭하겠습니다.)가 있습니다. 기존 방식인 플랜 A를 그대로 두고, 우리는 순서 선택 과정에서 두 가지를 목표로 해야합니다.
1. 플랜 A를 선택하는 기준 파악하기.
2. 플랜 B(또는 C, D 까지도)처럼 새로운 순서를 정하고, 플랜별 선택 기준을 파악하기.
플랜 A를 기존에 잘 사용해 왔다면 굳이 바꿀 이유가 없습니다. 국어라는 과목에서 이미 나에게 익숙한 방법만큼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순서를 선택하든, 이 칼럼에서 꼭 얻어가셨으면 하는 원칙은 "기존의 방법과 차별화된 방법을 최소 하나는 고려해두자." 입니다. 쉽게 말해 플랜 A로 시험지가 원활하게 풀리지 않을 때는 대비해, 플랜 A와는 완전히 다른 풀이 순서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플랜 A가 선택-문학-독서인 학생이 있을겁니다. 그런 학생의 플랜 B로 선택-독서-문학과 문학-독서-선택 중 어떤 순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당연하게도 문학-독서-선택입니다. 플랜 B를 정하는 까닭은 플랜 A로 풀기 어려운 상황(선택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변수에 대응하기 위함인데 기존 방법과 차별점이 적은(=플랜 A의 약점을 그대로 가진) 방법인 선택-독서-문학을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물론, 풀이 순서를 두 가지만 선택할 필요는 없기에 선택-독서-문학 순으로 푸는 방법이 필요하다 여겨지면 플랜 C로 추가하시면 됩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플랜 A가 막힐 경우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플랜 B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험지를 지배하며 푸는 것은 풀이 순서를 정하는 것 외에도 다른 부분을 요구하는데, 위에서 선택한 풀이 순서를 선택하는 기준을 확실하게 정하는 과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 문학-선택-독서라는 풀이 순서를 "문학이 독서보다 쉬울 때 선택해야겠어." 같은 기준을 세우는 방식처럼, 내가 어떤 상황에서 풀이 순서를 선택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2. 시험지에 따라 순서를 적용하자.
1번에서 풀이 순서와 순서별 선택 기준을 정했지만, 아직 이 방법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활용하기엔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겁니다.
당연합니다. 아직 우리는 순서와 기준을 정했을 뿐, 실제로 이 운용을 연습해보지 않았으니까요. 우리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의 차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풀이 순서의 유동성을 어떻게 연습할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실모를 풀며 시험지마다 선택 기준을 적용하는 방법입니다.
차후에 실모 활용법에 관한 칼럼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실전 모의고사를 통해 실전과 비슷하게 시험지를 운영하는 연습은 실모를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1번에서 지문의 난이도에 따라 문학/독서 중 무엇을 먼저 풀지 정했다면 실모를 풀며 지문들을 훑어본 이후 풀이 순서를 판단하는 식으로 학습할 수 있습니다.
3. 현장에서 적용하자.
1번과 2번에서 학습한 내용을 현장에서 적용할 차례입니다. 2번에서 학습한 시험지별 대응법을 연습했던 그대로 적용하면 됩니다.
시험지 파악과 순서 선택은 파본 검사 과정에서 진행해도 괜찮고, 여의치 않으면 시험을 시작하고 나서 진행해도 괜찮습니다.
"시험을 시작하고 나서 선택하면 시간 낭비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본격적인 문제 풀이 이전에 시험지의 흐름을 보고 환기한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생각합니다. 시험을 쳐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1교시의 중압감 속에서 처음으로 문제가 막히는 순간만큼 멘탈이 흔들리는 때가 없거든요. 그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겁니다.
설명만으론 이해가 어려우실 것 같아 24학년도 수능 시험지에서의 사고 과정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저는 24 수능을 대비하기 위해 플랜 A~D를 준비했고, 풀이 순서와 선택 기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플랜 A : 문학 - 선택 - 독서(문학이 쉽고 독서 세 지문이 전부 쉽지 않을 경우)
플랜 B : 짧은 독서 두 지문 - 문학 - 선택 - 주제 통합 독서(6, 9월 기조처럼 문학이 쉽지 않고 짧은 독서가 쉬울 경우)
플랜 C : 선택 - 독서 - 문학(독서 문학 전 지문이 쉽지 않을 경우)
플랜 D : 독서 - 문학 - 선택(전부 난이도가 비슷하게 쉬울 경우)
독서 첫 지문인 <경 마식 보도>입니다. (ㄱ이 금지어네요...)
제재 자체가 사회 제재 중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첫 문단을 읽으니 지문 자체도 굉장히 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역대 기출들에 비해 지문의 구성도 간결했기에 독서 지문 중 쉬운 편이라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독서 지문인 <이상치와 결측치>입니다.
실제로 기출을 풀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과학기술 제재 중 난이도가 매우 낮은 편이었습니다. 지문을 훑어보니 23 수능의 클라이버 지문 느낌도 나며 충분히 빠르게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 마식 보도와 마찬가지로 독서 지문 중 쉬운 편이라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두 지문을 간결하게 훑어보고 우리는 "짧은 독서는 모두 쉽다"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플랜 B 또는 플랜 D라는 선택지가 남은 상태에서, 시험지의 남은 지문에 따라 유기적으로 순서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독서 지문인 주제 복합 지문 <한비자>입니다.
특정 사상에 관해 다양한 사상가들의 해석을 묻는 지문이었기에 빠르게 풀어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내용 역시 언젠가 쓰게 될 당해 평가원 모의고사 활용 방법에서 설명하겠지만 9월 모의고사에서 예견된 형식 그대로 문제가 출제되었고, 문제 형식 역시 꽤 까다롭다는 생각과 함께 주제 통합 지문은 어렵다 판단했습니다.
독서 지문들을 훑어보며 "짧은 독서는 쉽고 주제 복합 지문은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문학과 선택 과목을 확인하면 되겠네요.
저는 파본 검사에서 독서까지 파악하고, 문학과 선택 과목은 시험을 시작하고 난 이후 판단했습니다.
첫 문학 작품인 <김원전>입니다.
전반적인 내용을 슥 훑어봤을 때 난이도가 높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김원전>만으로는 풀이 순서를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아, 다른 작품들도 확인한 이후 결정하기 위해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습니다.
24 수능이 끝나고 유명해진 작품이죠. 잊잊잊이라 불리는 <잊음을 논함> 세트입니다.
당해 9월 모의고사에서 수필이 까다롭게 출제 되었기에 신경써서 확인했는데, 첫 문단을 보자마자 플랜 B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만약 플랜 D를 선택해 문학부터 풀게 된다면 두 번째로 보게 되는 지문이었는데, 시험 초반부터 저런 문학을 마주한다면 빠르게 풀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어려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초반이나 멘탈이 나간 상태에서 마주했다면 풀어내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할매턴우즈로 유명한 세 번째 문학 지문, <골목 안>입니다.
소설을 한번 슥 훑어본 이후, 지문이 겉보기엔 만만해 보였지만 빠르게 읽어보니 내용들이 말도 안되게 튕기길래, 이건 확실히 문학이 어려운 시험지라고 생각하며 플랜 B를 확정지었습니다.
현대 소설까지 읽고 우리는 "문학이 쉽지 않다"라는 사실을 파악했으니 플랜 B를 확정지었습니다.
마지막 문학 작품인 <일동장유가&화암구곡> 입니다.
사실 풀이 순서가 확정된 상황이라 익숙한 작품이 나왔구나 정도로 파악하고 넘겼습니다.
많은 수험생들, 특히나 언어와 매체를 먼저 풀고 독서/문학으로 넘어가던 학생들을 당황시킨 35~36번 문제였습니다. 아마 문제의 난이도보단 생소하고 처음 보는 형식에 시간이 지체되어 전반적인 시험 운영이 꼬인 경우가 많았을겁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 사실 플랜 B든 플랜 D든 선택을 중간에 푸는건 동일했기에, 멘탈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큰 영향을 받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풀이 순서를 확실하게 정하니 여유를 가지고 '이런 지문이 있다는건 알고 들어가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고 문법 다 맞추고 매체 45번 틀렸습니다...)
앞서 설명한 사고 과정에서 확인하실 수 있듯, 저는 <한비자> <잊음을 논함> <골목 안> <언매 장지문>을 전부 읽어보고, 지문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진 상태로 시험에 들어갔습니다.
순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번이라도 지문들을 읽어본 것과 순서대로 풀며 지문을 처음 마주하는 상황은 지문 이해 정도에서 조금이라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EBS 연계 공부를 하는 이유 역시 지문에 익숙해지기 위함임을 생각한다면 비록 시간이 소요 되더라도 순서 결정 과정이 시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요.
더불어 24 수능의 등급을 판가름한 지문들이 위 지문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용한 방법임은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24 수능에서 백분위 99를 달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유동적인 풀이 순서를 구성한다면 시험지에 따라 대처할 수 있으며, 지문들의 대략적인 난이도와 내용을 알고 푸는 것은 시험 운용과 멘탈에 확실하게 도움이 됩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고 꾸준히 학습하면 충분히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칼럼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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