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63편 - 목적 의식과 비전
많은 학생들이 스타크래프트를 하다보니(저 세대는 스타였는데요, 요즘은 롤인가? ㅋ) 전쟁이라는 것을, 군인이라는 존재를 굉장히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면이 있습니다. 예컨데 스타크래프트에서 마린은 자기 체력이 다할 때까지, 저글링과 뮤탈에 둘러쌓여도 끝!까!지! 총을 손에서 때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현실적인 게임을 가보면, 소위 '모랄빵'이라는게 있습니다. 모랄(morale)은 '사기'를 의미합니다. 재미있게도 e를 하나 뺀 moral은 도덕을 의미하죠. (재미있게도 둘 다 추상적인 의미를 지니내요) '모랄빵'이 난다는 것은 싸우기 전에, 혹은 중에 사기가 떨어져서 무차별로 패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순신이 이런 면에서 굉장히 잔인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했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원칙주의자였기에, 매우 공평하고 일관적인 원칙을 위아래로 모두 강조하였습니다. 일본군에게 잡히면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근데? 이순신한테는 걸리면 얄짤이 없었습니다. 탈영하다가 걸리면 사형, 제대로 일 처리 안하고 횡령하고 삥땅치다 걸리면 사형 등등.
좀 극단적인 사례로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선 단! 한척이 홀로 133척(혹은 333척이라고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작은 어선부터 보급선까지 다 합친 수치를 의미하지 않나 합니다)을 막는 동안 나머지 11척은 모랄빵이 나서 뒤에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나중에 허겁지겁 전장으로 합류했다죠. 의외로 매우 용통성이 있는 면이 있어서, 군법에 의하면 모조리 모가지 형이었지만 이때는 봐주셨답니다.
마린은 수많은 질럿과 저글링에 둘러쌓여도 패주하지 않고 끝까지 사격을 가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군인을 일종의 싸움 기계로 보는 경향이 있었죠
https://namu.wiki/w/%ED%95%B4%EB%B3%91%28%EC%8A%A4%ED%83%80%ED%81%AC%EB%9E%98%ED%94%84%ED%8A%B8%20%EC%8B%9C%EB%A6%AC%EC%A6%88%29
12척으로 133척 ㅋㅋㅋㅋ 영화 <명량>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실제로는 1vs133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처음에는 혼자서 이순신 장군선이 막아섰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A%85%EB%9F%89_%ED%95%B4%EC%A0%84
조금만 더 현실성 있는 게임의 경우, 아군 장군이 전사하거나 아군 부대원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을 경우 조종 불능의 상태가 되며 부대원이 통제불가한 상태로 패주합니다. 전형적인 모랄빵이며 전쟁사의 굉장히 당연한 상식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HCo4dZNiE&ab_channel=%EC%93%B0%EC%9D%B4%EC%9C%A0%EB%84%A4%EC%8B%9C
우리가 군대식 한국 교육, 한국 중고등학교에서 강요받는 '정신무장론' 또한 군대의 산물입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크게 육체와 정신으로 분류하곤 합니다(둘을 합쳐서 보는 관점도 있는데 글이 산으로 가니 여기서 컷). 실제로 심리학 공부를 조금만 해보면, 육체와 정신은 서로 상호의존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데 몸의 심각한 부상이라던지, 아니면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분비의 영향을 인간의 성품과 성격,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에는 아직 ptsd라는 개념이 확립되지 않아서, 심각한 포격과 전쟁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병의 발발을 단순히 꾀병으로만 취급하고 징벌적인 치료(?)를 행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꾸로 정신이 몸을 지배하기도 하고, 몸이 정신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즉 몸의 무장, 근육량, 섭취 칼로리, 영양 균형, 무장 정도 뿐만 아니라 전우애, 유대감, 상관에 대한 신뢰, 궁극적인 목적성 등 정신적 무장 또한 군인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사관학교를 간 학생들은 저보다 더욱 잘 아실 껍니다.
이처럼 '군기'(깃발말고)는 매우매우 중요합니다. 엄격한 원칙 하에 상명하복과 빠른 명령 체계, 신속하고 효율적인 조직도와 각 군인이 가진 자부심, 애국심, 나라와 국민을 위한 강렬한 마음은 열역한 환경과 위험 속에서도 그들을 전선에서 유지시키는 강력한 원동력입니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이 국가적으로 '붕괴'하였습니다. 수도 카불이 불과 2주만에 뚫려버렸죠. 관련 다큐를 보면 너무나 잘 보이지만, 아프간 군대는 그야말로 허수아비 군대였습니다. 군기도 확립되어있지 않고 군복을 제대로 입기는 커녕 월급도 못받아서 길가던 시민들에게 통행세라도 받아서 연명하던 수준이었습니다. 왼쪽은 남베트남 멸망 당시 미국 대사관의 모습, 우측은 카불 대사관의 모습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8199143
탈북민들께서 북한 군대를 경험하고 나서 한국 군대를 체험하면 매우 놀란다고 합니다. 북한군과 달리 한국군은 기본적으로 상관을 만날때마다 경례를 하고, 지나가던 차량에도 경례를 하고, 군복과 군모를 매우 정중하고 점잖게 착용하고 있으며, 실탄 사격 훈련과 같은 위험한 일의 경우 엄격한 통제 하에 질서가 매우 잘 잡혀있음에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북한은 정 반대이거든요
https://www.youtube.com/watch?v=3WbIGwHQ-6Y&ab_channel=%EB%B3%B4%EB%8B%A4BODA
북한 군인에게도 조국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까요? 물론 김정은 휘하의 소수 정예 부대와 일부 군인들에게는 있을 듯 합니다. 저도 전수조사를 한 것이 아니기에. 그런데 탈북민들이 하나같이 한국 군대를 경험해보면 매우 놀란다고 합니다.
일단 북한군은 기본적으로 못 먹습니다. 물질(그러니까 비슷하게 말하자면 육체)적으로 매우 곤궁한 상태이니까 정신도 개판이 되는 겁니다. 군모를 삐뚤게 썻느니 마느니 그딴건 전혀 안중에도 없답니다. 사격 훈련을 할 때도 가장 잘 맞는 총, 그러니까 누군가의 총을 돌아가면서 쏘게 된다고 합니다. 탄피 줍기나 실탄 관리 등이 체계적으로 될 리가 없습니다.
탈북민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북한군은 군기가 없는데 한국군은 배우던 것보다(세뇌되던 것보다) 훨씬 더 체계도 잘 갖춰져있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서 존경과 애국심이 투철하다는 점에 대해서 굉장히 놀란다고 합니다. 물론 제가 한국군을 절대 찬양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도 급격한 일반병 월급 인상으로 인하여 사관생도의 월급과 역전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대거 자퇴를 한다거나, 의사 같은 전문직종이 공중보건의 같은 곳을 가는게 아니라 그냥 일반병으로 가버리는 등.(다만 전 일반병의 월급 인상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여러가지 구조적 문제가 터지면서 군대는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그들의 대한 존중과 존경, 혜택? ㅋ 대한민국 군대 또한 위기로 가고 있습니다(사이 좋게 군대가 망해가는게 동족이라서 그런가 ㅆ발)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난번 미얀마 사태가 터졌을 당시에, 만약 한국이 파병을 결정한다면 자원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비록 제 변변찮은 한 몸이지만, 제가 역사를 공부해보니 un군을 비롯한 미국 중심의 서방 세계로부터 625전쟁을 비롯한 경제, 군사 원조를 받은 덕택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강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면 어찌 행동했을 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상상을 해봅시다. 미얀마의 군부에 충성하는 자들은 무슨 자들일까요? 미얀마라는 국가를 위해 나 한 몸 희생할 수 있다는 강력한 정신무장을 한 사람들일까요? 천만에요. 그들이 시민군(도 아니고 시위대인 경우도)을 상대하는 것을 보면,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변태놈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안위와 영화를 위해 군대에 충성할 뿐이지, 더 많은 물질적 혜택이 주어진다면 곧장 배신할 놈들입니다.
제가 대의와 순리에 따라 미얀마 시민군이 이긴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얀마 시민들은 북한과 한국이 분단 이후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한때 한국이 북한 비슷하게 될 뻔한 위기들을 어떻게 국민들의 힘으로 극복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군부 독재의 종착지는 북한이고, 민주화의 종착지는 한국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시민군이 군부보다 열악한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진입대 한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시민군은 정신적 무장 측면에서 군부 독재 휘하 폭도들에 비해서 훨씬 강력한 것입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이 매우 비겁하게도 선전포고도 없이 선빵을 갈기자, 수 많은 미국 청년들이 열의와 자긍심, 분노를 느끼고 자진입대 행렬에 몰려들었습니다. 일본 제국은 패망하기 직전까지, 수 많은 자국민 일반인들까지 세뇌와 통제로 국가주의를 강요했습니다. 남이 시켜서 싸워야 하는 군대와, 스스로 싸우기 위해 모인 군대가 충돌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주 뻔한 것입니다.
미군의 전설로 남은 데스몬드 도스를 다룬 <헥소 고지>에서도 그런 정신적인 면모들이 잘 드러납니다. 데스몬드 도스 의무병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신념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였고(아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양심적 병역거부자), 약 100명이 넘는 부상 동료들을 후송하여 생전에 명예훈장을 수여(보통 전사자가 많이 받음)받았습니다. 신념이 공포를 억누루고 얼마나 인간에게 큰 용기를 주었는지 알 수 있는 굉장한 사례입니다
https://namu.wiki/w/%EB%8D%B0%EC%8A%A4%EB%AA%AC%EB%93%9C%20%EB%8F%84%EC%8A%A4
제가 꼰대처럼 저차원적인 목적 의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훈계를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전 관찰을 하고 깨달은 바를 설명할 뿐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목적과 비전, 의식 또한 다 다릅니다. 누구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누구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누구는 국가를 위해서, 누구는 인류를 위해서, 누구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누구는 정신적 만족감을 위해서, 누구는 호기심 때문에(저 ㅋ) 등등 다양한 이유와 배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이, 대부분 공부를 매우 잘 하는 학생들의 경우 나이에 비해 상당한 비전과 목적 의식,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공부의 신 강성태 선생님 또한 비슷한 사례로 꼽을 수 있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에, 공부 의지가 불타올랐다고 이야기 합니다(자세한 이야기는 강성태 유튜브 참조).
누차 말하지만 물질적 풍요를 저급하다고 까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아버지의 경우에는 현실적인 안정과 성공이 공부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밤에 불을 켜고 교과서를 보다가, 피곤해서 자고싶은 제 친할아버지한테 야단을 맞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전 물질적으로 풍족한 상황에서 마음껏 학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 만으로도 여러분이나 저희 아버지나 모두 박수를 받을 만 합니다.
안창호 선생께서도 말씀하시길, 각자 역할과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게 애국이라고 하셨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생각 수준을 좀 더 확장하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 만으로도, 세계적인 교육학자들이 한국은 입시 지옥이라고 혀를 내둘러도 우리는 고통과 시련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을 만 하고,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낸 사람들이 나중에 정치인이라던지 기득권이 된다면 분명 한국 사회도 변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무거운 엉덩이로 앉아 있으면서 고통을 견디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한국, 좀 더 나아가서 세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각이 있을 정도만 해도, 우리가 꽤나 훌륭히 잘 버티고 있음을 알기만 하더라도 힘이 좀 더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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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편 목적 의식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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