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뻘글
재수가 끝이 났다. 내 재수를 함께한 오르비에 작별을 고하는 바이다. 그에 앞서,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향하는 길에서의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남들은 미성년에서 벗어나자 마자 가는 대학. 이를 등지고 선택한 또다른 한 해의 학생 생활. 그로 인해 나는 성년이 되었어야 함에도 아직 미성년이다. 육체적, 행정적 나이는 미성년에서 벗어났노라- 고하고 있음에도, 아직 고등학생 같은 사고와 행동에 갇혀 있음은 내 정신이 미성년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 하다.
대학에 간 친구들의 소식을 간간이 전해 듣곤 한다. 너무나 빛나 보였다. 현역때 차마 선택하지 못했던 학교를 갔던 선배는 어느새 편입에 성공해 곧 고려대생이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인설잡대라고 비하하던 학교에 간 어느 친구는 그곳에서 여자친구도 만들고 성적장학금과 대외활동, 연합동아리 등을 통해 소위 인싸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게 묻는 듯 했다. 넌 저들이 저렇게 빛나는 것을 이루어 낼 동안 무엇을 했는가? 나는 차마 부끄러워져 답할 수 없었다. 네가 그렇게 비하하고 무시하던 것들에서 얻어낸 것을 보아라. 네 일 년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나? 아니었다. 내게 남은 것은 불어난 7키로의 체중과 약간의 우울증, 불안장애, 좁디좁아진 인간관계의 스펙트럼, 그리고 고작 16 오른 평백이 다였다. 내 일 년은 딱 그정도의 가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현역때 35355로 개좆쳐망한 성적에서 24422의 성적으로 변한 것에서 위안을 삼는 것이 어떠냐고.
솔직히 말하면 불만족스럽다. 삼반수라는 세 글자가 머릿속에서 어른거리는 듯 하다. 하지만 내게는 이 지독하고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일 년간 더 수행해낼 자신이 없다. 주위 친구들이 너무나도 부럽다.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초라해지는 나를 발견하는 매 순간마다 자기혐오가 치솟아 견딜 수가 없다.
나는 대학에 가야겠다. 24422따위가 가봤자 뻔하다. 라는 비난을 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꼭 대학에 가야겠다. 일 년간 너무나도 지쳤다. 이 병신같은 짓거리를 또 하기로 선택한 당신에게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과연 당신이 지금을 돌아 보았을 때, 삼수 하지 말 걸. 따위의 말을 지껄이기 전에 그만 두라고. 뭐 난 개병신아싸새끼라 대학 가봤자 좆목질도 못할거고 남는게 학벌밖에 없으니 장수를 해서라도 좋은 학교에 가겠다고?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무엇이 있는가?
내 가치관을 당신에게 강요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 글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혐오의 글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내년의 나는 이 따위 저열한 감정의 배설을 읽어내리며 피식 웃고 넘길 수 있는, 청춘의 회랑을 지난 성년의 나이길 간절히 바란다.
부디, 내 재수를 함께 해준 이 모든 감사한 이들에게 청춘의 기쁨이 깃들길 감히 바라며, 익명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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