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2번, 2022학년도 9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17번 (하버마스, 슘페터) 분석 [이상 도덕·윤리 연구소]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2번, 9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17번 (하버마스, 슘페터).pdf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2번 (하버마스, 슘페터)
2022학년도 9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17번 (하버마스, 슘페터)
이상(理想) 도덕·윤리 연구소
소장 임재섭
이번에는 두 문제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2015 개정 교육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엘리트 민주주의자 슘페터를 활용하여, 평가원은 올해 두 모의평가에서 모두 민주주의 문제를 냈습니다. 별로 어려운 문제는 아니지만, 새 교육 과정에서 민주주의 문제가 어떤 경향으로, 어떤 내용을 담은 채로 출제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하에서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2번’을 ‘2번’으로, ‘2022학년도 9월 모의평가 윤리와 사상 17번’을 ‘17번’으로 약칭하도록 하겠습니다.
2번 갑 지문 읽기
정치적 의사 결정과 제도의 정당성은 단순 다수결 절차를 통해 확보될 수 없다.
“단순 다수결 절차를 통해 확보될 수 없다.”라는 말로 단순 다수결에 대한 회의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단순 다수결을 비판하면서 무엇을 지향할 수 있을까요? 만장일치? 결선 투표? 차등 선거? 독재? 무정부주의? 가능성은 아직 무궁무진합니다. 조금 더 읽어 봅시다.
그 정당성은 시민들이 상호 간의 대화와 논증을 통해 자신의 선호를 바꿀 수 있어야 확보된다.
아하, 갑은 심의(審議)·숙의(熟議)를 중시하는군요. ‘상호 간의 대화와 논증’, 즉 심의를 통해 무엇이 옳은 길인지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서로 설득하고 또 설득되면서 한 결론에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네요. 아무리 서로 깊이 있는 토론을 하더라도 설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서는 안 되니, “자신의 선호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필요하겠습니다.
이미 이 지점에서 갑은 심의 민주주의자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사상가가 누구냐 하는 것까지 꼭 알아낼 필요는 없습니다만, 생활과 윤리를 같이 공부하시는 분이라면 담론 윤리의 내용을 떠올려 갑이 하버마스라고 알아챌 수 있겠고, 특정 교과서로 공부하신 분이라면 심의 민주주의자로서의 하버마스를 기억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2번 을 지문 읽기
선출된 의원들은 유권자를 수동적으로 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량권을 갖고 능동적으로 국가를 대표한다.
다소 의미심장한 문장이군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의미는 ‘선출된 정치인이 유권자를 대리·대표한다.’인데, 을은 “선출된 의원들은 …… 재량권을 갖고 능동적으로 국가를 대표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유권자의 의사를 대신 수행하는 것을 넘어 의원 자신의 재량으로 능동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유권자의 위치를 단순히 ‘투표자’로만 한정하고 의원의 능력을 신뢰하는, 다분히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입니다. 엘리트주의와 대의 민주주의가 결합한 엘리트 민주주의입니다.
첫 문장만 읽고서도 을이 엘리트 민주주의자 슘페터라고 알아차리는 것도 이처럼 가능합니다만, 만약 첫 문장만 읽고서는 잘 모르겠다 싶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뒤 문장들을 보면 엘리트 민주주의의 성격이 아주 확고해집니다.
민주주의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대한 경쟁일 뿐이며, 시민의 역할은 선거에서 대표를 택하는 일에 머무른다.
허허, 이렇게까지 시민을 무시해서야…… 오늘날 같으면 달걀 맞을 발언이군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시민을 얕보는 걸까요? 어쨌든 을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잘 드러났습니다. 시민과 정치 엘리트는 서로 차원이 다른 존재들이고, 시민은 투표만 해라. 정치는 엘리트들에게 맡겨라. 시민이 할 일은 서로 자기가 더 낫다고 주장하는 엘리트들 가운데서 당선자를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시민은 정치적 영역에서 무책임하고 충동에 빠지기가 쉽다.
마지막 문장을 보니, 을이 왜 시민을 그렇게 얕봤는지 알겠습니다. 을은 정치의 문제에서는 시민이 무책임하고 충동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했군요. 실제로 시민이 그런 존재냐는 둘째치고, 어쨌든 을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치를 엘리트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개연성이 있습니다.
17번 갑 지문 읽기
민주주의는 의사소통의 합리성에 기초한 공론장에서 서로의 입장과 정책을 토의할 절차를 필요로 한다.
2번의 갑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입장과 정책을 토의할 절차’, 즉 심의 절차를 중시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심의가 이루어지는 공론장의 기초로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제시하는군요. 17번의 갑도 역시 심의 민주주의자인 하버마스입니다. 각종 교과서에서 시민 불복종 부분에서 하버마스의 시민 불복종을 설명하면서 의사소통의 합리성 개념을 동원하죠.
하버마스를 심의 민주주의 부분에서 소개하는 교과서가 5종 중 교학사뿐이고, 그마저도 202쪽 날개에 짤막하게 쓰여 있을 뿐인데도 평가원이 심의 민주주의를 두 번 연속 하버마스로 출제하다니 조금 놀랍습니다. 교과서에서나 연계 교재에서나 심의 민주주의는 하버마스보다 롤스를 통해 제시되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말이죠. 역시 롤스보다 하버마스가 심의 민주주의의 전형에 가깝고, 이론이 더 체계적이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습니다.
17번 을 지문 읽기
민주주의는 실제로는 시민의 지배가 아니라, 시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정치가의 지배를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어원을 민주주의의 실제 의미와 분리하는 순간입니다.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의 ‘δῆμος(demos, 민중)’와 ‘κράτος(kratos, 지배)’가 합쳐진 말로, 어원적으로 ‘민중의 지배’, ‘시민의 지배’를 뜻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시민의 지배가 아니라 정치가의 지배라는 말은, 2번 갑 지문의 “선출된 의원들은 …… 재량권을 갖고 능동적으로 국가를 대표한다.”라는 말과 관계될 것입니다. 선출된 정치가가 시민의 의사를 곧이곧대로 수동적으로 반영하기만 한다면, 실질적으로 시민의 지배라고 해야 맞겠죠. 하지만 정치가가 재량권을 갖고 능동적으로 정치하는 한에서는 실로 ‘정치가의 지배’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습니다. 17번 을의 정체도 밝혀졌군요. 역시 엘리트 민주주의자 슘페터입니다.
2번 ㄱ. 갑: 대화 참가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이의제기가 가능하다. (○)
이 선지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말끝이 “가능해야 한다.”가 아니라, “가능하다.”입니다. 하버마스가 심의 민주주의자로서 자유로운 이의제기가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를 제시한 것과 이 선지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당위적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대화 참가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할 능력이 있으며 여건이 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버마스가 의사소통의 합리성에 근거한 공론장을 제시한 것은 윤리적 상대주의와 회의주의, 독단주의 모두를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윤리적 상대주의를 따라 각자에게는 각자의 선이 독립적으로 있다고 주장할 것 같으면, 심의를 통한 결론 도출이 굳이 필요하지 않겠죠. 반대로 윤리적 독단주의를 따라 특정한 아주 현명한 사람이 선이라고 말하는 것을 선으로 받아들일 것 같으면, 역시 시민들의 집단 지성에 호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윤리적 회의주의를 따라 선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있더라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공론장에서의 논의는 무의미하며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란 허구적 개념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하버마스가 신뢰한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에 대한 일정한 기준이 전무하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난 것이고, 아주 확고부동한 진리가 있어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맹신에서도 벗어난 것이며, 여러 사람이 모여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면 바른길을 언젠가 찾아낼 수 있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이 더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군나르 시르베크·닐스 길리에, 『서양철학사 2』, 윤형식 옮김, 이학사, 2016, 1024~1028쪽.)
선지와 관련해 요컨대, 하버마스는 대화 참가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서로 이의를 제기할 능력이 인간들에게 일반적으로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라는 것도 제시할 수 없겠죠. 결국 하버마스는 “대화 참가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이의제기가 가능하다.”라는 사실 진술과, “대화 참가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이의제기가 가능해야 한다.”라는 당위 진술에 모두 동의하는 것입니다.
2번 ㄴ. 갑: 모든 정책 결정의 과정에 시민이 모두 직접 참여해야 한다. (×)
하버마스의 어떤 개념으로 정확히 이 선지가 부정되는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상식적으로 이렇게 요구할 수는 없겠죠? 정책 하나도 빼먹지 않고 모든 결정 과정에서 모든 시민이 직접 참여해서 심의해야 한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요구입니다. 현대 사회에 정책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냥 ‘하버마스가 이렇게 주장한 적 없다.’ 정도로만 정리하고 넘어갑시다.
2번 ㄷ. 을: 민주주의는 실제로 인민의 지배가 아니라 정치인의 지배이다. (○)
17번의 을 지문 첫 문장에서 곧바로 드러나기도 했고, 각종 교과서에서도 슘페터의 입장으로 서술된 문장입니다. 이 정도는 개념으로 알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2번 을 지문의 첫 문장과 둘째 문장에서 시민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히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정치 엘리트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으로 미루어 ㄷ을 추론해 낼 수도 있겠습니다.
2번 ㄹ. 갑, 을: 시민은 항상 합리적으로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하는 존재다. (×)
17번 ⑤ 갑, 을: 정치가와 일반 시민의 정치적 판단 능력은 차이가 없다. (×)
두 선지 모두 슘페터의 입장으로 옳지 않아서 오답입니다. “시민은 정치적 영역에서 무책임하고 충동에 빠지기 쉽다.”라고 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일반 시민들보다 정치적 판단력이 좋은 엘리트들에게 정치를 맡기라는 것이 슘페터의 주장이니까요.
2번 ㄹ의 경우에는 하버마스의 입장으로도 옳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이 항상 합리적으로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한다면 정치 영역에서는 공론장이 필요 없어야 할 텐데, 하버마스는 정치 영역에서 특히 공론을 강조하니까요.
① 갑: 정책 결정의 정당성은 심의가 아닌 다수결로 보장된다. (×)
하버마스에 따르면, 정책 결정의 정당성은 심의로 보장됩니다. 심의를 거친 끝에 마침내 모든 시민의 동의를 얻어낸, 즉 만장일치로 통과된 정책들이 정당성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심의가 아닌’에서 이 선지를 오답으로 판단했다면 아주 훌륭합니다. 다만 ‘다수결로 보장된다.’에서 오답으로 판단했다면, 완전히 옳은 방식은 아니며 다소 위험하다고 하겠습니다. 다수결이란 “회의에서 많은 사람의 의견에 따라 안건의 가부를 결정하는 일”을 뜻합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의 기준이 꼭 과반수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국회에서 개헌안을 가결할 때 재적 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이 경우는 ‘많은 사람’의 기준을 재적 의원 3분의 2로 정한 다수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장일치, 즉 ‘많은 사람’을 전체 시민들의 1분의 1로 설정한 것도 다수결이라고 불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점을 생각해서 하버마스가 2번 갑 지문에서 ‘단순 다수결 절차’라는 말을 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장일치를 아무렴 적어도 ‘단순 다수결’이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뭐, 그렇다고 해서 다수결이 만장일치를 확실히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지점이 더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다수결’, ‘많다’를 검색해 보신 후, 전수(全數)를 ‘많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노파심에 주의를 드리자면, 만에 하나 평가원이 ‘심의가 아닌’ 등의 제한 조건 없이 “정책 결정의 정당성은 다수결로 보장된다.” 따위의 선지를 내보낸다면, 여러분께서는 오답으로 판단해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생활과 윤리 17번 ④에서 “타당한 규범은 대화에 참여한 다수에 의해 동의를 얻은 규범이다.”를 하버마스가 지지할 주장이 아닌 것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평가원은 전수는 다수라고 부를 수 없다고 언어적 결론을 내린 셈입니다. 그렇다면 만장일치 역시 다수결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치부할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다수결’의 언어적 정의상 만장일치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언어적 검토까지도 아주 꼼꼼하게 진행하는 수능이라면 모의평가와 달리 이런 문제를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② 갑: 공정한 토론을 위해 관련 공직자와 전문가는 배제해야 한다. (×)
하버마스는 “(서로의 입장과 정책을 토의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은 서로 자유롭고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관련 공직자든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토론에 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③ 을: 유권자는 선거 이외에도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
슘페터는 유권자의 역할이 ‘선거에서 대표를 택하는 일’, 즉 ‘그들을 지배할 대표들을 승인하거나 부인할 기회를 갖는 것’으로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선거 이외의 적극적 참여는 정치 엘리트가 할 일입니다.
④ 을: 민주주의는 정치가들의 권력 획득 경쟁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
슘페터는 “민주주의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대한 경쟁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치가들이 서로 누가 더 잘났는지 경쟁하는 과정이 민주주의이고, 다수 득표가 곧 그 경쟁의 승리이며 권력 획득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상 도덕·윤리 연구소 소개
이상 도덕·윤리 연구소는 최근 수능에 대한 감각과 교과 지식이 충분한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철학·윤리 전공자와 타과 전공자를 아우르고 있어 균형 잡힌 시각에서 모의고사를 제작한다. 수험생분들의 수능 대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오류 없는 문제, 쉽지 않은 문제, 깔끔한 문제를 지향한다.
이상 도덕·윤리 연구소 연구원
- 임재섭 서울대학교 철학과
- 강승철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 김성민 서울대학교 인문계열
- 박세은 서울대학교 철학과
- 박정민 건국대학교 철학과
- 여지선 동국대학교 철학과
- 임재원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 조민준 서울대학교 철학과
이상 도덕·윤리 연구소 약력
2021년
-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Éthique Fatale 모의고사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출간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심의 민주주의, 엘리트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완성되신 분들은 2번 ㄱ 부분만 보셔도 좋습니다.
연구원분 중에 좋은 자료 올리셨던 분 계셔서 모의고사 구매했습니다! 잘 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의고사가 모쪼록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