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드림 [378009] · MS 2011 · 쪽지

2013-08-28 17:43:54
조회수 5,893

20대가 취업을 못하는 이유

게시글 주소: https://simmen.orbi.kr/0003809293

20대가 취업을 못하는 이유
다음은 이 분의 상담실 게시판에 올려진 상담내용 중의 하나이다. 질문글에는 방황하는 20대 젊은이의 적나라한 생각이 담겨있고, 답변글에는 그에 대한 적나라한 분석과 용기있는 질책이 구구절절이 배어있다. 사이버 공간의 여기저기에 인용되어 유명해진 글이다. 나도 이 글을 보고 그의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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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님께 카운셀링 의뢰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입춘이 지났건만 아직도 키보드를 치고 있는 제 손꾸락은 차갑기만 합니다. 김형태님께서는 몸 건강하시겠지요.
다름이 아니오라 요즘 사회적 이슈인 "이태백"의 일원인 본인의 넋두리를 들어주십사, 더불어 형태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 이렇게 얼어붙은 손꾸락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는 지방대 디자인학과 졸업예정이고 다른 이태백 일원들과 마찬가지로 여러군데 이력서를 넣고 있는 와중입니다. 연락오는 곳은 별로 없고 무언가 불안하면서도 편안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솔직히 제가 무엇을 하고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원래의 전공인 제품디자인을 하고 싶다가도 디스플레이를 하고 싶기도 하고 영화공부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제품디자인을 하자 라고 하면 평생 영화공부는커녕 영화찍는 것도 구경하지 못할 듯하고 영화공부를 하자고 하면 학교다닐 때 했던 과제들의 즐거움이 떠오릅니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하니 직장을 다녀야 할듯해서 계속 이력서는 넣고 있지만 만약 회사에 다닌다면 영화공부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완전히 영화에 미쳤다든가 비범하다든가 하는 인간극장에 나올법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면서 다른 것을 병행하기란 힘이 들 것 같습니다.
아 정말 모르겠습니다. 올해 후반에 있을 영화교육기관(?) 시험을 보고싶은데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 매달려야할까 아니면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히 해야할까. 그렇다고 영화라는 것이 내 평생 직업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힘들고 배고픈 그 직업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나. 또한 4년동안 했던 디자인은. 대체.
기대를 걸고 있는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놔두시겠지만 그래도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호강을 시켜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마는 그 "안정된" 직장생활의 끝에는 나의 꿈이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백수가 되어 이것저것 가릴 때는 아니지만 신중하고 싶습니다. 섣불리 조금 앞만 바라보고 결정했다가는 나중에 후회 할 일들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기를 일단은 취직을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하고, 영화쪽이나 디자인 쪽으로 유학을 가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but 회사를 몇년 다니면 유학을 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영화교육기관에는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부메랑처럼 또 따라옵니다.
횡설수설 앞뒤 안맞는 소릴 해댔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이 행복한 고민일까요. 어쩌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하는 소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많이 사신 형태님께서는 지금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형태님의 나이가 되어서는 그때 나 정말 잘했어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앗 이것은 자기소개서 끝에 오는 말;)

당신은, 요즘 20대 청년실업자의 전형입니다. 20대가 왜 그렇게 취직하기가 어려운 줄 아십니까? 사람들은 불경기라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20대들이 정확히 하고 싶은 일이 없고, 확실하게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겁은 많아서 실패는 무진장 두려워하고, 무엇이든 보상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절대 시작도 하지 않으며 눈은 높아서 자기가 하는 일도, 주변의 현실들도 모두 못마땅하고, 시시껄렁하고, 옛날 사람들처럼 고생고생하면서 자수성가하는 것은 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어떡하면 편하고 안정된 직장을 얻어 돈을 벌수 있을까만 궁리합니다. 20대가 그런 식이니까 사회가 무기력해지고 경제가 침체되어 불경기가 오는 것이죠.
그럼 세상은 어떤지 이야기 해드리죠. 취업문이 좁다고들 난리지만, 사실 모든 회사에서는 새로운 인재가 없어서 난리입니다. 세상은 자꾸 변해가고 경제구조도 바뀌어가니까 새로운 젊은 인재들이 회사에 들어와서 젊은 피를 수혈해줘야 하는데 이력서를 디미는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개성도 없고 창의력도 없고 일에 대한 열정도 없이 그저 돈만 바라보고 온 사람들입니다. 회사입장에서 볼 때 그런 사람들은 조금만 더 나은 봉급을 주는 직장이 나타나면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둘 사람들로 보이고, 또 그들이 기대하는 젊은 혈기와 창의력도 없이 누구나 학원 좀 다니면 딸 수 있는 뻔한 자격증만 잔뜩 가지고 오죠.
그래서 요즘 회사들은 신입사원 최우선 기준이 "충성도"랍니다. 이말인즉슨, 너희는 그냥 시키는 일이나 로보트처럼 한다면 일자릴 주겠다는 뜻이죠. 개성과 창의력은 포기하고 잡부나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20대들은 자신들이 신세대이고 새로운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믿겠지만, 사실, 회사나 산업현장에서 당장 필요한 능력은 그런 겉멋이나 추상적인 감각이 아닙니다. 그리고 직장은 돈을 벌자고 다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당신처럼 하고싶은 일은 따로 있으면서 단지 돈만 바라보고 원하지도 않는 직장에 입사원서를 내는 것을 회사중역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500명 1000명이 와도 뽑을 사람이 없는 것이죠.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세상 어디에서도 원하지 않습니다. 20대가 취직을 못하는 이유는, 바로, 특별히 할 줄 아는 일도,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어른들은 그 사실을 면접때 눈빛만 봐도 다 알아봅니다. 그리고, 나약한 의지박약에 굴리는 잔대가리가 문제입니다.
당신이 쓴 글을 보십시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저걸 하면 배고플 거 같고, 이걸하면 잘 된다는 보장은 없고 돈도 벌고싶으니 취직도 하고싶은데 직장은 재미없을 것 같고... 그 와중에 대학원엘 갈까 유학을 갈까... 편안한 학생신분만 연장하려고 하고, 대체 뭘 하고싶다는 것입니까.
당신의 진로문제를 짧게 정리해보면, "하고싶은 건 많지만 고생해가면서 까지 꼭 해야할 건 아니고, 그냥 먹고살게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도 않거니와 또 시시할 거 같아요" 입니다.
그런 사람을 받아주는 회사는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만든 영화가 감동스러울 수 없고, 그런 사람이 기획한 디자인이 아름다울 리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20대들이 그렇게 많은 자격증과 명문대 졸업장과 수백장의 입사원서를 들고 뛰어 다녀도 취직이 안되는 이유이고, 나라의 심장부가 그 모양이니 이 나라의 경제가 침체되고, 장기 불황이 시작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당신들은 잘못된 교육탓으로 돌립니다. 물론 맞는 이야기입니다. 동정표 한장! 하지만, 교육이 엉망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당신들의 부모나 선배들은 더 발전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고 배워야합니다. 훨씬 열악한 환경 안에서 훨씬 일찍 철이 들고, 나라를 발전시켰으며 그 와중에 나름대로의 문화생활도 영위했습니다. 남탓, 시대탓, 환경 탓하는 것만큼 구제불능의 바보는 없습니다.
참고로, 아시아 모든 국가 중에서 우리 나라가 청소년의 어른에 대한 공경심 조사에서 꼴찌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어른을, 선배를, 과거를 존경하지 않는 젊은이는 원대한 꿈을 가질 수 없습니다. 꿈과 희망이란 "나도 저 누군가처럼 될테다." 하는 동경에서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당신들의 큰 바위 얼굴은 누구입니까? 그런 게 있습니까? 오직, 자기자신과 돈에 대한 동경만 있지 않은가요?
섣불리 결정했다가 나중에 후회할까 두렵다고요? 왜 해보지도 않은 일을 후회할 걱정부터 합니까? 보지도 않은 영화를 재미없을까봐 포기하고, 가보지도 않은 여행지에 볼 게 없을까봐 안 가기로 하고, 저 요리가 맛이 없을까봐 안 먹고... 사는 건 대체 뭘까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정말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는지, 디자인은 또 얼마나 훌륭하게 할지, 회사를 다니면 얼마나 뛰어난 업무능력이 발휘될지, 당신이 어떻게 해보지도 않고 침대 위에서 그 짧은 인생경험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양다리에 삼발이에 문어발로 온갖 일에 맘을 다 걸쳐놓고 실제로 하는 일은, 해본 일은 하나도 없으니 불안할 수 밖에요. "하고싶은 일이 많다는 행복한 고민"이요? 웃기는 자위입니다. "내가 뭘 할줄 알고 뭘 하면 행복해 하는 인간인지 이 나이 먹도록 하나도 모르겠어요."로 들리는 헛똑똑이의 넋두리로밖에 안들립니다.
좀더 신랄하게 당신의 심리를 파헤쳐 보자면, 영화를 하고 싶다는 것은 현실도피성 희망입니다. 솔직히 디자인도 최고로 잘할 자신이 없는 것이죠. 자신의 전공쪽으로도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사실 나는 디자인보다 영화에 관심이 훨씬 많다. 그래서 늦게라도 영화공부를 다시 한다." 라는 상황에 대한 알리바이를 미리 준비해두려는 것이죠.
취직이 계속 안되는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입사원서 던지다가 어디 좋은데 운 좋게 취직되면 당신은 이러겠죠. "먹고 살아야하고, 부모님께도 효도하려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디자인과 영화를 포기했어." 그냥 나약한 생활인일 뿐인데 어느새 순교자로 승화되는거죠. 그 좋은 머리를 그런 자기합리화에 쓰기에 바쁘니 뭘 하나 똑부러지게 실천하겠습니까.
내 말이, 억울합니까? 그럼 실천해 보십시오. 우선, 근무조건이 좀 열악한 직장을 선택해서 취직을 하세요. 그럼 금방 취직됩니다. 봉급도 좀 만족스럽지 못하겠지만, 자기 한입 먹고 살만큼은 줄 겁니다. 그리고 20년 계획으로 영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세요. 용돈을 쪼개서 모으고 모아서 캠코더를 사고... 컴퓨터를 사서 편집장비를 마련하고 (웬만한 PC로 다 가능합니다.) 책을 사서 읽고, 주말에 영화 관련 포럼에 찾아다니고, 틈틈히 시나리오를 쓰고, 휴가때는 비디오 영화를 만들어 보고, 이 모든 것은 직장 다니면서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20년 계획으로 꾸준히 하면, 습작이 꽤 될거고, 시나리오도 몇편 나올 겁니다. 디자인 공부한 건 영화에 고스란히 활용될 거니까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요. 그렇게 해서 40대가 되면, 당신은 어느새 다니던 직장에서 직위도 올라가 있어서 월급도 꽤 되고 어느새 안정된 직장이 되어있으며,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에 경쟁자가 없으리 만큼 탄탄한 준비를 가진 40대 신예 영화감독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럼 바로 성공이냐? 아니죠. 입봉하고 나서 한 10년 현장에서 시행착오도 겪고, 기대도 받았다가 실패도 했다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진정한 실력을 쌓습니다. 앗 어느새 50대가 되었네요. 여러분들은 이 정도되면 인생 쫑났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나이먹고 알고보면, 세상은 어른들의 세계입니다. 그렇게 30년 줄기차게 정진해서 60 가까이에 걸작을 하나 남길 수 있다면, 당신은 최고로 멋진 인생을 산 것입니다. 인생은 결과보다 과정에 더 많은 가치가 있으며, 결과까지도 좋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는 것이거든요. "인생은 60부터" 란 말에는 삶의 커다란 진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말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후줄근한 직장에 다니면서 20∼30년이나 투자할 만큼 영화를 그 정도로 갈구한 것도 아니거든요.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저렇게 할 수 없는 피치못할 적당한 구실을 찾느라 머리를 쓸 뿐이죠. 벌써 몇가지 변명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르죠. 결국 자기 인생에 변명을 만드느라 젊은 날을 허비하고 있다면 참 암울할 뿐입니다.
당신들, 정말, 왜들, 그렇게도, 경험으로 진리를 찾기를 두려워한답니까?
* 한 개인의 카운셀링에 대해 어느새 "당신들"이라는 복수형이 되고, 이렇게 정성들여 장황하게 답변을 올린 것은, 정말이지, 청년실업의 주인공들이 20대들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까닭입니다.
김형태 드림 http://www.thegim.com


------------------------------형태님 안녕하십니까

상담받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현재 재수중이며 세계 최고(최고의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의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학생입니다.
오늘 조승연씨의 ‘생각기술’을 읽다가 감정에 받쳐 이 글을 씁니다.
작년 고3때 전 학교에서 예체능계로는 전교 1등을 하던 학생이었습니다. 2학년 때 돈 사정으로 인해 미술학원을 끊고 3학년 때 다닐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5월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알게 되면서 그 학교 특성에 매료된 저는 여름방학동안 책 한 장 보지 않고 내내 포트폴리오 준비를 했습니다.
한예종 1차에서 불합격한 뒤 입시실기에 대한 불안감에 9월 정도에 노량진의 유명 미술학원을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더 늦으면 다른 학생들을 좇아갈 수 없다는 말에 다급해진 저는 당시의 굉장히 어려운 집안사정에도 불구하고 42만원을 내고 학원을 1달 다녔습니다.
제가 애니메이션과를 가야겠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학원에서는 성적이 이 정도면 디자인과를 가야한다 디자인과를 가도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지껄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저는 그 말에 승낙했습니다. 나중에야 그것이 학원의 실적을 올리기 위한 농간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이 부평인지라 1시간 거리의 노량진을 왕복해야 하는 탓에 지하철에서 영어단어장을 외우는 것 외에는 다른 공부를 할 시간이 매우 부족했었습니다. 학원 1달을 다닌 후 본 수능에서 가까스로 예체능계 1등급을 받는, 저로서는 그 전에 봐 왔던 어느 모의고사보다 못 본 최악의 성적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아간 학원.......국민대 공업디자인과는 좀 힘들고 성균관대 정도는 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저는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그래도 성대는 가야겠기에 방학동안의 수업비 고지서를 받아 본 가족들은 입을 다물수 없었습니다. 330만원..........그런 돈이 우리집에서 나올 턱이 없었습니다.
친척들 중 가장 형편이 넉넉하던 큰아버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도와줄 것을 부탁드렸지만 한 달치 40여만원밖에는 도와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아....
실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과나 디자인과에 지원할 수없다고 생각했던 저는 차선책으로 수시 1차까지 붙고 2차에서 떨어졌던 경험이 있는 동국대 영화영상학과(애니메이션이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는 학과임)와 한양대 연극영화과, 그리고 다군은 그 당시 이름도 처음 들어 본 추계예대 영상시나리오과를 지원했습니다.
3학년 내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동국대와 한양대가 떨어지고 추계예대는 합격, 그리고 갈 마음은 없었지만 혹시나 해서 썼던 계원조형예술대 애니과만이 합격되자 착잡함이 극에 달해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재수할 형편도 안되고 학원을 다닐 수 없었고 동국대나 한양대를 가기위해 재수를 한다는 것도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계원예대를 가려했던 저는 지인을 통해 그 학교 출신 선배님과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전문대 졸업생은 진급이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감독이 되기 힘들다고 자신도 4년제 편입을 준비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은 재수를 결심했습니다. 가족과 주위 분들, 그리고 나 자신과 토론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서울대 나와서 회계사가 되거나 의대를 나와 의사가 돼서 40살까지 돈을 벌고 그 다음에 애니메이션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저도 형태님이 그랬던 것처럼 40살이 되어서 풍족한 생활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나약해져 지금과는 달리 애니메이션 감독의 꿈을 접게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꿈꿔오던 애니메이션 감독의 꿈을 어떻게 지울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6월. 다시 한예종 입시기간이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저에겐 이런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려는데 이런 공부를 해야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일주일 전에 부모님께 한예종을 그림이 뛰어나서 합격하는 곳은 아니라고 한예종 입시 준비를 집에 들어오는 10시 이후에만이라도 할테니 허락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절대 안된다며 강하게 반대하셨습니다. 작년에도 그렇게 하다가 실패하지 않았느냐 목표(서울대)를 세웠으면 끝까지 해야하지 않느냐며 10시 이후에 한예종 준비한다고는 할지라도 그곳에 마음이 쓰이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목표는 원래 서울대가 아니라 한예종입니다.
요즘 도서관에서 뽑아 든 책들은 하나같이 한예종에 도전하라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읽은 조승연씨의 ‘생각기술’이라는 책에서도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저는 서울대에 가기위한 공부는 컴퓨터가 할 수 있으나 한예종 입시를 준비하는 것은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틀을 벗어나려 했지만 부모가 시키는대로만 걸어온 겁쟁이같이 느껴집니다. 애니메이션 감독한다는 저에게 철이 덜 들었다고 하고 철이 들면 공무원을 하게 될껴라는 부모님의 의견에 동의 할 수없습니다.
두서없이 막 글을 썼습니다. 미술을 전공하셨기 때문에 제 상황을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서울대로 대표되는 명문대를 가서 한예종을 준비해도 된다....만약 서울대를 다니다가 한예종을 지원하면 더 좋은 점수를 면접관들이 줄 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예종 준비만 하다가 굶어죽진 않을까 걱정되고......
한없는 잡념에 마음 쓰이고 있습니다. 형태님께서 어떤 답변을 주실까 너무 궁금합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썼지만 마땅히 이런 이야기 털어놓을 사람도 없어 답답한 마음을 다 털어놨습니다.
형태님 전 어떻게 해야될까요.



ps)그리고 저희 집에 제가 그림을 그릴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제가 집에서 그리는 것은 눈치도 보이고 해서 집말고 다른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이 카운셀링을 하면서 굶어죽을까봐 걱정하는 젊은이들이 꽤나 많다는걸 알고 퍽 놀랐습니다.
여러분들은 대체 몇일이나 굶어봤습니까? 다른건 몰라도, 이젠 굶어죽을 걱정은 안해도 되는 시대 아닙니까?
아직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있어 굶을까 걱정한다는 것은 의식수준이 이디오피아 난민 어린이 수준입니다 (이디오피아국민들 이런 비유해서 죄송합니다)
행여나, 이런 꿈을 좇다가는 곪지 않을까. 이런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 밥벌래, 월급노예로 살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굶을까봐 걱정되면 부모님말씀대로 공무원준비하시고, 구청에서 민원인들 신경질이나 받으면서 평생 안정적인 철밥통에 만족하며 사세요. 애니메이션은 무슨, 얼어죽을, 굶어죽을.
당신이 그렇게 갈팡질팡 아무런 확신도, 야망도, 신념도 없이 애니메이션을 한다면 한종대가 아니라 지브리 스튜디오에 특채로 들어간다해도 훌륭한 에니메이션 아티스트가 될수 없습니다.
인간을 만들어 주고, 예술가를 만들어주고, 작품을 낳게 해주는 것은 그 어떤 학교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제 마음속의 신념과 노력이지요.
돈벌어서 40살쯤되서 경제적으로 여유있으면 그때 하면 어떻겠냐고요?
좋지요. 멋진 계획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살아온 40년은 대체 어떤 인생이었을까요?
그 40년을 살아오면서 당신은 훌륭한 인격과 좋은 정서와 존경받을만한 철학과 열린 사고방식과 타인에게까지 감동을 줄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해있을까요?
40이되면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질수는 있다고 자신하겠지만, 저렇게 하나의 예술가로서의 인격은 장담할수 있습니까?
예술은 돈과 시간만 있으면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것입니까? 아니면 좋은 학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꿈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돈만 풍족하면 다 이룰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입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싹수부터 글러먹은 사람이고, 그렇기때문에 당신에게는 아무리 돈과 시간을 많이 주어도 당신은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없습니다. 왜냐면 당신은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전혀 모르기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당신은 계속 엉뚱한 목표만 좇고, 좌절할때마다 남핑계, 주변 핑계를 댈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그림 그릴 공간이 없다고요?
저는 지금 나이 마흔에 매주 한장씩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제가 그림 그리는 공간은 지하실에 가로 2미터도 안되는 작은 벽입니다. 그 바로 옆에는 싱크대가 있지요. 공간이 좁아서 두께가 있는 캔버스는 엄두도 못냅니다. 그래서 항상 종이에 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내가 그릴 그림과 무슨 상관이랍니까.
캔버스가 없으면 종이에 그리고 물감이 없으면 볼펜으로 그리고, 볼펜도 없으면 탁자에 엎질러진 물을 손가락을 붓삼아 그릴 수도 있습니다.그림을 진정으로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렇게 그립니다. 지금 당신의 집에 그림 그릴 공간이 없다고 말하는 당신에게는 영원히 그림 그릴 공간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정말, 집안에 노트 한 권 펼 공간도 없단 말입니까? 당신은 관짝안에서 살고 있습니까? 그림그릴 공간이 없다는 당신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지요.
당신은 실패를 준비하는 인간형입니다. 언제나 실패할수 밖에 없다고 말할 핑계거리만 매일매일 수집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쓴 글을 보십시오. 온통 당신이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의 모음입니다.
먼 미래에 실패자일 당신은 수많은 핑계를 재산으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부모때문에, 망할놈의 그 노량진 미술학원때문에, 입시제도때문에, 그리고 나이가 먹어갈수록 핑계의 스케일도 커져서 한국의 문화수준때문에, 획일화 풍토때문에, 낙후된 애니메이션 업계때문에, 시대를 잘못 타고 났기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결국은 애니메이션의 에자도 못하고 평범한 공무원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어느날 어느 술집에서 그렇게 넋두리나 할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 먼 미래에 미야자키 하야오를 무색케 할 아티스트라면, 세계최고가 될 인재라면,
저 위에 써놓은 써런 소리들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설마 세계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이 될 인재가 재수시절에 노량진 학원 한번 잘못다녀서, 부모가 공무원하라고 해서, 혹은 굶어 죽을까봐 걱정되서 마흔까지 돈벌다가, 그러다가 그만 평범한 인간이 되버리고 마는 일도 있을까요?
미래의 세계최고를 꿈꾼다면, 오늘 스무살의 고민과 정신세계와 사고방식도 세계최고의 젊은이라 여겨질 정도가 되야 마땅한것 아닙니까? 당신이 진정 미래에 세계최고의 인물을 꿈꾼다면, 지금은 세계최고의 젊은이라는 의식을 가져야합니다. 세계최고답게 생각하고 행동하세요.
고민상담도 세계최고의 젊은이의 고민을 털어놓으세요. 덕분에 나도 세계최고의 카운셀러가 돼봅시다.좀!
오늘 나는 당신에게 실랄한 비판은 주지만, 훌륭한 애니메이터가 될수 있는 조언은 한마디도 안 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당신이,
"그동안 애니메이터를 꿈꾸며 공부하는 틈틈히 노트에 볼펜이나 샤프로 그린 그림이 5,000장정도 되는데,
이런것도 나중에 에니메이션을 하려는 저에게 도움이 될까요?"
라는 질문을 해온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나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서 당신을 도우려고 할것입니다.
그런게 없다면, 역시 당신은 굶을까 걱정하는게 정당합니다.
지금의 당신이 이 상태대로 애니메이션을 하면 당신은 굶습니다.
이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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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skjw12 · 452720 · 13/08/28 19:25 · M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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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lpzaq · 345501 · 13/08/29 01:37 · MS 2010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확실하게 맞는 이야기 이고,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돼는 이야기 입니다.

  • 꽁기코기 · 400712 · 13/08/29 13:18

    어째서인가요? 궁금합니다..!

  • 가즈오의나라 · 110707 · 13/08/29 16:43 · MS 2005

    개인의 노력과 신념?만 있으면 성공할수 있다는 말이고 전혀 틀린말이 아닙니다만...사회적인 관점으로 보면 분명 정규직이나 성공을 할 수 있는 자리는 소수입니다. 시스템적으로 낙오자가 발생할수밖에 없는것이 현실의 구조이기 때문에 낙오자들에게 너가 꿈이없다, 노력을 안한다, 고생하는걸 두려워해서 성공하지못하는것이라고 하는건 잘못된것이죠

  • 수가100 · 377028 · 13/09/18 06:29 · M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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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가100 · 377028 · 13/09/18 06:30 · M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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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uantsuff · 427531 · 13/08/29 11:10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