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5편 - 공감과 상상
이번편은 개인적으로 수험생들에게 한번 꼭 상기시켜주고 싶은 내용이 담겨있으니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이나 다른 학습서에서 다루지 못하지만, 꽤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거기 구독자! 보고 있습니까? 그림은 세계 1차대전의 모집포스터에 쓰인, 미국을 상징하던 엉클 쌤)
공감 능력은 인간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필수적인 사고 능력이라고 확신합니다. 인간에게는 공감이라는 것이 그다지 특별한 능력은 아니지만, 다른 생물체에 비교해보면 차이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악어는 인간과 달리 공감능력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옆에서 동료가 몇날 며칠을 굶고 있어도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먹잇감을 양보할 생각을 전혀 못합니다. 일단 당장 눈앞에 먹잇감이 있으면 물어뜯고 봅니다. 대단히 단순하기 때문이죠.
흔히들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이 결여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사이코패스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된 것입니다. 사이코패스는 놀랍게도 타인의 호감을 사고 신뢰를 주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공감 능력은 살아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반인이라면 망설이고 죄책감과 혐오감을 느낄 범죄에 대해서는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또한 공감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방식으로 병력을 동원할지 예상할 수 있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한다면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공감이라는 사고능력 측면에서, 태평양 전쟁 발발 초기의 일본 해군을 바라보면 좀 불쌍합니다. 당시 일본 해군은 미국의 전쟁 의지를 꺽고 협상할 의도로 진주만에 선전포고문이 제대로 전달되기도 전에 기습적으로 공습을 가합니다. 비록 전혀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악재와 일본군의 치밀한 준비로 미 해군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습니다. 인명과 물자 모두 충격적인 수준으로 피해를 입고 맙니다. 일본 해군은 미 해군의 주력을 완전히 뭉개버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전쟁의지를 상실하고 회담장으로 나오겠지?”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상대방을 너무나도 무시하고 안일하게 본 것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입장에서만 편하게 생각한 것이죠. 한번 거꾸로 생각해봅시다. 만약 일본 해군이 미 해군의 선전포고 전에 기습적인 공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주력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분명 복수심과 증오에 불타올라 어떻게든 보복을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해군의 주력이 괴멸당하고 미 해군이 본토 턱 밑까지 압박해오는 상황에서, 일본 해군은 전쟁의지를 잃기는커녕 물자와 인력을 최대한 쥐어 짜내서 미군에게 극렬하게 저항합니다. 본토에 핵폭탄이 투하되기 전까지 죽창에서 자살 공격 가미카제까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의 모집 포스터. 진주만 기습으로 전의를 상실하기는커녕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의에 불타오르며 자원입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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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승리병’이라고 불리는 일본 해군의 안일함은 개전 초 여러 전투에서도 그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심각하게 자만에 빠졌고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공감 능력의 결여는 미드웨이 해전을 앞둔 ‘워 게임’에서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워 게임은 우리 학생들에게 모의고사와도 같은 예행연습입니다. 작전을 실행하기 전에 모의로 아군과 적군의 모형을 가지고 병력의 배치와 효율, 안전을 점검하는 시간이죠. 이 예행연습의 특징은 아군모형 뿐만 아니라 적군모형 또한 참가자이자 같은 일본군 장교가 맡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각각의 입장들은 같은 일본군 장교로서가 아닌, 임의로 정해진 자신의 상황에서 최대한 효율적이고 뛰어난 전략으로 상대방에게 대처해야합니다.
당시 미 해군 모형을 담당한 홍군 장교들은 매우 놀랍고 뛰어난 전략으로 일본 해군의 취약성을 여지없이 폭로했습니다. 게다가 충격적이게도 홍군 장교들은 실제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이 취한 행동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전략을 들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워 게임을 실행해본 결과 일본 해군의 약점이 매우 많이 노출되었습니다. 통상 워 게임의 핵심은 이렇게 드러난 아군의 취약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안을 수립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을 앞둔 워 게임에서는 이러한 약점들에 대해서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넘어간다던지 심판자가 개입해서 일부 결과를 입맛대로 조정해버리는 어이없는 행태가 이어집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승리병의 한 증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을 앞두고 미 해군은 전의를 불태우며 가용 가능한 모든 전력과 자원을 집중하고 있었고, 일본 해군에게 한방 먹여주기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해군의 자만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오히려 미 해군이 전의를 상실하여 결투장에 참가하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워 게임은 전혀 의미 없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최선을 다해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아야하는 워 게임에서 얻은 것이라곤 일본 해군의 위대한 정신력 부심과 자만심이었습니다. 워 게임을 통해 상대방의 변칙적인 전략에 따라 적절한 대응방안(알고리즘)을 준비해야 했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준비된 것 없이 미드웨이 전투 중 미 해군의 기습을 맞고 일본 항공모함은 괴멸하고 맙니다.
(미드웨이 해전 직전 일본군에서 실시한 억지스러운 워게임을 풍자한 만화. 실제로는 다른 동료 장교들에게 비웃음과 냉소섞인 반응을 들었다고 한다)
역사에 기록된 뛰어난 장군들은 공감 능력이 투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쟁터에 투입된 병사들 중에서, 누가 죽고 싶어할까요? 누구나 인간이고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되도록 살아남기를 바랄 것입니다. 아무리 위험한 작전에 투입된 병사라도,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장군은 맨 뒤에 앉아서 앞에 있는 병사들에게 무작정 돌격하라고만 닦달한다면, 누가 그 말에 따르고 싶을까요? 훌륭한 장군들은 이러한 병사들의 마음에 잘 공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2차대전이나 태평양 전쟁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이 권력을 얻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물학적으로 공감 능력이 감퇴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재벌 오너들의 갑질과 폭언은 이러한 사실을 잘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공감능력의 결여로 아랫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하대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충성심과 신뢰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아군의 목숨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무리한 작전을 감행한 장군은 총부리를 들이미는 적군보다도, 자신의 면전에 권총을 들이미는 부하를 면담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번 시간을 통해 제가 여러분께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특별한 사고 능력인 공감입니다. 전쟁사에서도 이 공감의 중요성을 여실히 알 수 있는 다양한 사례가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여러분이 장성해서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제가 결국 이번 편을 통해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출제자에 대한 공감’입니다.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6,9 모평이나 수능 문제가 공개되면 읽고 풀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사례처럼, 상대방을 공감하면 충분히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수능 국어에 대해서 공감해볼 것입니다. 출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다소 독특한 시도를 할 것입니다. 왜 하필 이런 지문에서는 이런 문제가 나왔을까요? 왜 하필 이 문제의 답은 이것으로 정해졌을까요? 출제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의도로 이렇게 문제를 출제했을까요? 제가 앞으로 여러분과 지겹도록 연습하게 될 질문입니다. 과연 수능 국어 출제자들은 학생들이 눈알을 최대한 빨리 굴려서 각 선지에 해당하는 내용을 일일이 찾아가며 풀기를 바랐을까요?
일본 해군은 미국을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출제자를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말리고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출제자에 대한 공감! 그것이 곧 수능 국어를 이해하는 것이고 수능 국어를 정복하는 지름길입니다.
전쟁사 시리즈(약 11편 예정)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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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bi.kr/00021679447 - 번외편 외교전
알고리즘 학습법(4편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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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이란 무엇인가(11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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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글볼때마다 존나웃김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