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준 [449592] · MS 2013 (수정됨) · 쪽지

2018-04-30 12:10:36
조회수 11,513

[송영준] 노력만 하는 학생들에게

게시글 주소: https://simmen.orbi.kr/00016982316




4등급인 시절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10시간이 넘게 공부하고

교재를 n 회독 하고

인강을 어떻게든 완강하고

실모를 돌리며 양치기를 하면 




다시 말하면

노력만 하면


자연스럽게 

국어를 잘하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계속 4등급을 받았습니다





..............................



처음으로 1등급을 받았습니다 


예전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줄었고

문제도 덜 풀었으며 

진도가 밀려 교재를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적이 올랐습니다 


나를 위한 진짜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



저는 26살에 1학년이 되었습니다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치고

25살에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제 손에는 군대에서 모은 100만원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px가 없어 돈 쓸 곳은 없었지만 

당시 병장 월급은 9만원이었기에 

큰 돈을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늦은 수능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교재 하나를 살 때도

강의 하나를 구매할 때도

제 본래 성격과 달리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땐 그게 서럽게 참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던 것도 같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머리가 아프니까요


그래서 권위자나 유명인처럼 다른 사람에게

내 의사결정을 쉽게 맡기곤 하죠


연예인이 입었던 옷을 덥석 구매하거나 

좋아요가 많은 음식점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처럼요.

 




생각하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나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저도 그런 어려운 일을 하기는 싫었지만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누구도 찬성하지 않는 공부였고

함께 하는 사람이 없는 공부였으며

수험생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던 

전에는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강제적으로 제 자신을 철저히 돌아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위해 공부한 적이 없다.'라는 사실을요 






..............................



예전의 제 모습은 이랬습니다



시간을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하루 공부 시간을 10시간으로 정해 놓고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정해진 시간을 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집중이 되지 않아도

시간을 채우려고 절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진도 나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인강을 정해진 부분까지 들어야 하기에

집중이 안 돼도 다음 강의의 버튼을 눌렀습니다 


교재를 정해진 날짜까지 끝내야 했기에

이해가 안 돼도 2 회독이란 핑계로 다음 단원으로 넘어갔습니다


기출을 5개년, 7개년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어디에도 나에 대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내 관심은 온통 시간과 진도처럼 겉으로 드러난 것에 있었습니다  



멋있고 예쁘게 공부하기에 바빴습니다



누군가에게 근사하게 자랑할 수 있는 이력들

후기에 쓰면 더할 나위 없이 보기 좋은 것들



그러는 동안 

나와 나의 시간은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 25입니다

더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어요






나를 이해하기 위해


'모른다'라고 쉽게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모르는 것이 생길 때면

무엇을 모르는지 왜 모르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냥 모르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것에도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과만이 아닌 과정 전체를 살피려 노력했습니다 


어떤 문제의 답이 3번이라면

답이 왜 3번인지뿐만 아니라

내가 왜 1번을 고르게 됐는지

그 과정을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과정을 분석하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니 

더 이상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을 공부해도 점수가 오르는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멈춰있던 등급이 기다렸다는 듯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위한 진짜 공부가 시작된 것이죠





.................................



강의를 오가며

학생들의 학습 플래너와 공부 인증 사진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4월 27일>

몇 시에 일어났다

몇 시에 학원에 갔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강의를 들었다

몇 페이지까지 공부했다

몇 강까지 들었다 



이런 내용들이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 부분을 다르게 이해했다.' 

'나는 이런 실수를 자주 하니 이런 방법으로 보완하겠다.'


와 같이 나를 위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학습 플래너에는 어떤 내용들이 적혀 있나요?




10시간을 앉아 있는 것도 노력이고

인강 진도를 빼는 것도 노력이며

문제를 많이 푸는 것도 노력입니다 


하루하루 플래너를 예쁘게 꾸미는 것도 노력입니다 


여러분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적은 노력만 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의 학습 플래너에는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으면 좋겠네요




나를 위한 공부가 될 때

절대 바뀔 것 같지 않았던 내 성적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남은 200일은 여러분의 시간으로 채워 보세요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