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으니 이제 쉬어라. 모두가 너를 비웃을 것이다.
"timing beats speed, precision beats power"
"타이밍은 스피드를 압도하고 정확도는 힘을 제압한다"
현 UFC 챔피언 코너 맥그리거가 오늘로써 무너진 당시 챔피언 조제알도를 이기고 한 말이다.
아름다운 말이다. 스피드와 힘은 타고나는 것인데 알도처럼 핸드스피드와 무지막지한 힘 없이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저 말은 코너에게만 쉬운 말이다. 코너처럼 페더급 전체에서 가장 긴 리치를 갖고 있고
전형적인 카운터형 복서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저 말은 권아솔 같은 국내 파이터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난 살면서 많은 것을 이뤘던 것 같다. 보잘 것 없지만 대학 시절,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그런 건 감췄다. 드러내봐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마음아파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대부분은 동정, 안쓰러움이다. 1등이 10000등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10000등이 뭐 어때. 다 잘 될 거야"는 솔직히 말해 기만이다. 저런 위로는 날 더 괴롭게 했다.
아픔을 드러내는 게 유행인 적이 있었다. 아파요. 같이 울어주세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것 같아요. 수능 점수가 안 나왔어요.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한 번 더 일어서면 된단다. 아무도 너를 비웃지 않을 거란다. 그 누구도 지금의 결과로 너를 무시하지 않을 거란다. 학벌따위 아무것도 아니란다.
내가 10여년 전 수능을 망치고 하루하루를 숨만 쉬며 살아갈 때, 내게 위로를 건넸던 많은 어른, 문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런 말 하는 사람들은 죄다 고학력, 고스펙으로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었다. 청춘은 아파도 된다던 그 분은 서울대 교수였고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던 승려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미국인이다.
오히려 학벌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이는 학벌의 벽을 극복했던 자들이다. 전문대를 졸업한 배달의민족 CEO가 명문대에 관해 어떻게 평가했는지 들어보라. 아픈 게 씻겨버리고 싶은 쓰레기같은 기억으로 남을지 청춘으로 추억될 수 있는지는 현재의 자기 처지에 달려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활약하며 바쁘게 살던 이에게 휴식은 꽤 많은 것을 주지만 원래 멈춰있던 자가 또 멈춰봐야 무엇이 보이겠는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역시나 되는 일이 없었다. 익숙지 않은 외국어로 의사표현하기도 바쁜데 현지인끼리의 날선 디베이트에 외국인인 내가 쉽게 끼어들기 어려웠고 학부시절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내가 교수의 질문을 받을까 떨었다. 이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나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도 시인 나르테스크의 구절을 봤다. "고생했으니 이제 쉬어라. 모두가 너를 비웃을 것이다." 이 말은 나의 많은 걸 바꿨다.
저마다 힘든 사정이 있는 이들에게 많은 위로가, 또 그보다 많은 질타와 동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만 기억하자. 고생했으니 주저앉아도 된다(세련된 문체로 쉬어도 된다)는 말은 모두가 너를 비웃을 수도 있다는 말이 생략됐다.
알아두자. 쉬어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탓해도 된다. 그것 때문이니. 다만, 모두가 너를 비웃을 것이다. 그게 싫으면 무얼해야할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것도.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본장이 온다 1
헉
-
한완수 뉴런 0
내신으로 미적 확통 둘 다 해야하고 수능 선택은 못 정했는데 미적 시발점 확통...
-
그냥 다 같이 슬픈거였네 괜히 서로 날세우진 않았으면 함
-
썰풀땐 반응 개쩌는데 수업하면 ㅈㄴ졸고 영하 8도의 냉탕이 되어버림 이거완전
-
대학뱃지는 넣은지 두시간도 안지나서 인증되던데 아무래도 성적표는 검증 더 오래 걸릴라나
-
국어공부법고민 0
07현역이(최저러) 입니당. 이제 방학두 얼추 끝나가는디 국어공부를 시작도...
-
그냥 좀 조용해지면 다시 올듯...
-
그냥 마음이 편함 그래서 시야가 넓어진 것 같음
-
안녕하세요. 올해 한국나이로 30살입니다. 개인사정상 고졸로 살아오다 대학에 미련이...
-
내가 싫다
-
괜찮나요?? 후기가 아직 많이 없어서
-
ㅠㅠ
-
지구과학 오리온 모의고사 4회분이고 아예 뜯지도 않았어요 작년꺼구 26000원에 샀습니다
-
다들 막 중학교 때부터 팔로우 누적되어있는데 난 딱히 쓸일이 없었어서 고3 막바지에...
-
예비고2입니다. 2학년은 경제 사문 3학년 때는 한지 생윤인데요, 제가 이기상...
-
행복해 6
다들 행복하세요 제가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근데 다운펌 이거 16
3주도 안됐는데 풀렸다더라.. 원래 금방풀림?
-
강민철t 풀커리 타는 중이고 인강민철 말고 다른 주간지 추천 부탁드립니다!...
-
연대가 중대보다 추합 발표를 일찍 했잖아요 중대 제 앞번호 중 연대 추합으로 빠질...
-
진짜 개많은듯
-
혹시나 우리가 4
괜찮은 시절에 만나 잘해줬다면은 우리 조금은 다를까
-
신석정 2
명시임 ㅇㅇ….. 우울할 때 읽으면 너무나도 내 상황을 잘 반영하더라고
-
노란색으로 되어있는 레어를 사면 약 20% 페이백 파란색으로 되어있는 레어를 사면...
-
안되겠지만..
-
에타 글 관련해서 질문 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쪽지 받아주실 수 있는 분 계실까요
-
저 글 메인갔네 0
어우..
-
이규철 T 너무 좋아서 콘서트 가서 싸인 받고 같이 사진 찍고 물리 특강 다 듣고...
-
15교육과정 기출>17 18 19 20 평가원=리트>>>>>옛기출이라 생각하는데 어케 생각함?
-
내가 못 마셔서 상대를 보낸다는 마인드 맥쏘사랑 복분자주 꿀주 마스터임 맛있어서...
-
사문 0
임정환 리밋으로 사문개념떼고있는데 병행할 교재 추천될까요?
-
그때 보이던 사람 아직도 많네요 신기하네요
-
웹으론안되나
-
어...이대로 끝날 수도 있을 것 같아 불안해서
-
지잡에서 3반수해서 간신히 설잡대 갔는데 여긴 그냥 ㅅㅂ 널린게 인서울, 명문대, 메디컬이네
-
열역학 고수분들 2
단열된 밀폐 상자에서 진자가 흔들리다 공기 저항으로 정지하게 되면 열에너지로 모든...
-
외대 language ai 1차추합 얼마나빠졌나요...? 0
점공상 14명이던데
-
소설 추천좀 8
책읽고 싶은데 뭐없나
-
지금 추합 발표났으면 최초합 합격증 못들어가나요 ㅠㅠ 0
캡쳐만 해놓고 까먹고 파일 저장을 안해놔서 그런데 최초합 합격증 조회 안되려나요...
-
술게임? …….
-
냥뱃 나왔다 2
흐흐흐
-
시작 전에 그냥 소주 반병 통째로 마셨거든? 그래도 답이없다 ㅋㅋㅋㅋ
-
충격) 은평구에 서식하는 코괴물이 있다?! 삐쓩빠쓩 0
그런 괴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일 보시면 유링게슝을 외치시고 도망가세요.
-
술 마실 친구가 나날이 주는 중 아 기구하군아
-
머리가 얼얼하네 0
진짜 희망 버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추합 많이도니 갑자기 희망회로 돌아간다
-
맨앞vs 맨뒤(사물함하나더쓸수 있는곳)
-
물론 안썻지만
-
등차수열이 아니면 저렇게 2n을 n으로 막 치환하면 안 되는거죠? 정석적인 풀이는...
-
마인드가 썩어빠졌는데
-
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많은 생각을 하기하는 글이네여.
감사합니다 에쎈유로만님..
최근에 읽은 글중에서 가장 느끼는게 많은 글이네요..
ㅠㅠㅠ 좋은 글..
좋은 글입니다
의미가 큰 글이네요
글쎄요?
저런 글들은 회의적으로 다시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일상이라 불리는 삶에대한 역설적인 주장들은,솔깃하지만 종종 유치하고 소모적인 행위를 하게 만들곤 합니다.
저 내용....글쎄요?
역설에 대한 역설같네요
역설적이군요
고생했으니 이제 쉬어라. 모두가 너를 비웃을 것이다.
이게 풀로 나온 시가 어떤거죠? 검색해보고 싶어서요
모두가 비웃어도 나는 고생했으니 내가 아니깐 쉬어도된다 그런의미로 받아들여지네요 . ㅎ 좋은글 읽고가요
이거 그 올드보이에 나오는 구절같다
오..
정말 맞는 말이네요. 저는 병원에서 이 진리를 깨쳤?습니다. ㅋㅋ